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대중문화 개방 (문단 편집) === 업계 등지에서 === 처음 개방 정책이 나왔을 때는 일본 문화에 의해 국내 문화가 잠식될지 모른다는 우려섞인 시선도 제법 많았지만, 이러한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출판 만화 시장과 애니메이션 시장 같은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다수의 영역이 마이너리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 예로 영화 시장의 경우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실사 영화 중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은 대중문화 개방 직후 개봉한 [[러브레터(일본 영화)|러브레터]]인데 이 영화의 관객 수는 공식적으로 약 115만 명 수준이며[* 다만 러브레터 개봉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완전 멀티플렉스 체제가 아닌, 단관 위주에 코엑스 메가박스와 같은 초창기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므로, 관객 집계는 서울에서만, 그것도 상당히 부정확한 수준으로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브레터가 동원한 115만 명은 오늘날로 치면 400~600만 명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후 실사 영화 중에서는 아직도 러브레터를 넘은 사례가 없다. 2003년 이후 거의 매년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등장하는 한국 영화에 비하면 아무래도 초라해 보이는 실적이다. 오히려 역으로 [[일본의 한류|일본에서 한류]]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이는 2000년대 이후 일본 대중문화(드라마, 대중가요, 영화 등)의 영향력이 쇠락한 영향이 컸다. 그렇게 2000년대 초중반 한류 배우들이 떴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턴 K팝으로 불리는 보이, 걸그룹들이 일본 가서 히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이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봐도 자국 대중매체의 점유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국가인 점과도 무관치 않다. 또한 한일간 대중문화를 개방하면서 한일 합작 영화와 드라마도 제작되었는데, 우선 [[국민의 정부]] 시기만 보면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GO(영화)]] 등과 드라마 [[프렌즈(동음이의어)#s-12|프렌즈]]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 인적 교류도 있었는데,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 연예인으로는 가수 [[보아]], [[윤하]]와 배우 [[윤손하]]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 연예인으로는 가수 [[초난강]]과 배우 [[유민(배우)|유민]], 그리고 일본인 멤버가 합류한 밴드 [[Y2K(밴드)|Y2K]]가 있었다.[* [[한류]](韓流)와는 조금 다른게 윤하는 일본에서 먼저 데뷔하였고, 보아와 윤손하도 그 무렵 일본에서 일본 연예인으로서 활동했었으며, 마찬가지로 유민과 초난강도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한 것이라서 [[일류]](日流)와는 다르다.] 다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이 시기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의 영향과 중복되면서 일본 문화 콘텐츠가 대중적인 컨텐츠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오덕후]]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산업분야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한국에 자생적인 시장이 거의 없다시피 한 꼴이니 영향이 없지 않았다. [[대한민국/문화 검열]]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과거부터 이어온 탄압과 투자 지원 제도의 미비로[* 문민정부 들어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 지원하긴 했으나 심사 지원 기준 미비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제외하면 거의 망하다시피했고 이후에도 지원 제도는 이어져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갈길이 멀다. TV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1998년 이전에는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어린이 시간대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방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일단 애니메이션 제작이 그리 수지타산에 맞지는 않았던 것도 있고, 더군다나 방송사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강제하는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서 반영이 되지 못했다가, 2000년에 들어서야 방송법 개정에 따라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상파 애니메이션의 시청률 하락으로 인한 시간대 앞당기기와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에서의 국산 애니메이션 작품 홀대(주로 [[아동용 애니메이션|아동용]]), 그리고 예능 및 드라마의 대폭 양산과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의 부실로 인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기반이 매우 부실해 있었던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일본문화에 완전히 잠식되어서 [[뽀롱뽀롱 뽀로로]] 같은 아동 대상 컨텐츠를 제외하고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결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애초에 한국의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작다~~ 하지만 이는 상술했듯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입으로 망한게 아니라 이미 한국 스스로 '만화는 나쁜 것'이라며 자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을 스스로 찍어 누르고 있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들어와 빈자리를 채워버린 케이스라 일본 애니메이션 탓만을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이미지가 씌이기 전까진 한국 또한 상당한 애니메이션 제작 능력이 있었으나. 자체 2D 애니메이션 산업이 무너진 이후, 사회 분위기를 피해가는 교육용, 아동용 3D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띄게 되었으며, 2D는 대다수가 하청으로 돌아섰다. 한국 소비층과 맞지 않았기 때문.] 한편, [[출판만화]] 시장의 경우는 상황이 약간 다른데, 초창기 아이큐 점프나 챔프 같은 잡지가 창간될 시기만 하더라도,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대형 일본 만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한국 작가들의 만화로 채워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잡지 대부분을 일본 만화가 잠식하던 때가 아니었다. 다만 그 이전부터 해적판 만화책은 이미 1952년 서봉재 화백의 <밀림의 왕자>부터 암암리에 존재했으며, 한국 만화계에 좋은 의미로든 좋지 않은 의미로든 꽤나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2000년대에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완전히 붕괴된 것이 가깝다.[* 아이러니하지만 해적판 시장이 완전히 멸망했을때가 2000년대 초엽이었는데 저작권법이 정비되어서 철퇴를 맞게 된데다가 이미 인터넷이 있기에 수익이 좀체 날리가 없게 된것이다. 대신 온라인 상에서 스캔본이라는 또다른 해적판이 범람 중이다.] 또한, [[1997년 청소년보호법 파동]]에 따른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및 만화가 기소, 이후 광랜이 보급되고 퍼져나간 불법 스캔본이 널리 퍼지면서 잡지만화시장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이에 반비례하면서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웹툰과 [[학습만화]]가 성장하고 작가진들 대다수가 학습만화나 웹툰계로 이전한 상태다. 심지어 [[임달영]] 화백의 예처럼 해외에서 오히려 성공하는 사례도 있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업계를 제외한 나머지 업계에서는 일본문화 개방으로 노골적인 표절 대신에 포맷이나 아이디어를 돈 주고 사오는 일이 정착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해적판 만화책이나 복제 비디오 등이 사라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보였으나, 그 자리는 [[마루마루]]를 위시한 불법스캔 만화와 무단 업로드된 애니 동영상이 해적판의 악명을 물려받았다. 2004년 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로 개방에 전진은 없는 상황. 5차 개방에 대한 논의가 2011년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의하여 벌어졌으나 유야무야되었다. 애초에 인터넷으로 접할건 다 접할 뿐더러 문화 개방을 통해 양국 모두 상당한 발전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관계로 개방 자체에 별로 큰 신경을 안쓰는 것 같다. 즉 '''더 이상 정부쪽에서 문화 개방을 위해 힘쓰지 않아도 문화 교류의 범위와 규모가 자동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2010년대 중후반까지 한일양국의 정세는 냉랭하지만, 문화 분야에선 이미 상당부분 교류가 있었다. 한국의 뮤지션이나 아이돌이 일본에서 음반을 발매하거나 TV출연으로 인기를 얻어 화제가 되었으며, 이에 미치진 못하지만 한국 현지에서도 일본가수의 내한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선 케이블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방송프로그램을 정식으로 시청할 수 있게 되었고 콘솔게임 시장에서도 수 많은 일본 게임들이 한글화를 통한 정식발매가 이뤄진데다 모바일을 통한 일본 온라인 게임의 한국내 서비스까지 가능해졌다. 그 외에 양국의 문학작품들이 출간되어 작가들의 낭독회나 강연을 통한 교류도 넓어지는 실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